나의하루 마늘까기와 수학 2016/05/10 09:55 by 장딸

나는 단순노동을 좋아한다. 마당에 돗자리를 펴놓고 퍼질러 앉아 봄나물을 다듬고, 마늘을 까다보면 이 노동에도 '기술'이 있음을 알게 된다. 고구마줄기의 껍질을 벗겨내던 어느 순간, 기술을 혼자 깨치고 기뻤다. 고구마줄기 껍질까기의 숙련공으로 태어난 순간이었다. 이런 단순노동의 즐거움은 멸치똥따기, 잡초뽑기 뿐 아니라 사무실에서 하는 엑셀 노가다질에서도 마찬가지다.

중학교 때 경향신문 어느 구석에서 피아노와 수학은 비슷한 면이 있다는 기사를 보고 끄덕끄덕했다. 뭐라고 설명은 할 수 없는데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기사나 이후에 괴델,에셔,바흐 같은 책을 보면서 화성이나 음계를 하나하나 쌓아가는것, 혹은 그냥 물리적으로만 봐도 음악은 파동이고 그것들의 하모니니까, 그런 차원인 것이겠거니 결론을 내리고 살았다.

얼마전에 본 세이모어의 영화를 보다가 깨달았다. 그 둘은 아마도 다른 차원에서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끊임없는 반복과 훈련. 영화의 도입부를 보고 쌩뚱맞아서 뭐지? 했는데 곧 너무너무너무 좋아져버렸다. 그 경험많은 노장도 '연습'앞에서는 여섯살짜리와 똑같다. 나는 어릴때 피아노 연습하는 게 참 좋았다. 음을 하나하나 짚어서 한 마디를 내것으로 만들고 한 소절을 내것으로 만드는 것. 애초에 나는 남과 비교하는게 아니라 나와 싸웠다. 악보를 잘 볼 줄 몰랐는데 선생님이 쳐주시는 걸 보고 외웠다. 지금도 악보를 보면서 치는 건 하지 못한다. 처음에만 악보를 보고 외운뒤 안보고 친다. 내 머릿속에 기억들과 싸우는 그 과정이 즐거운 것이다. 그런데 수학도 그렇다. 원리를 일단 배우고 나면 그 뒤는 끊임없는 문제풀이와 사고훈련이다. 대학에서 수학을 배우며 수많은 종이를 썼다. 명제와 증명을 거듭해서 손으로 쓰고 또쓰고, 그러다보면 이해되는 지점이 온다. 세이모어가 한국전쟁에서 긴 행군을 하며 자기는 끝내지 못할 거라고, 여러사람이 실려나가는 그 여정을 마치지 못할꺼라 생각했는데 전혀 무리없이 끝마친 뒤 알았다고 했다. 음악가로서의 훈련과 사고방식덕분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비싼돈내고 공연을 보고, 강수진과 김연아와 세이모어 아저씨를 보고 감탄을 하는 것은 그냥 예술성 때문이 아니다. 그것을 만들어내기까지의 수련이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가 절로 나온다. 사실 그 덕에 오랜기간 버텼다. 요즘은 발레를 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한다. 삐루엣이나 뿌에떼가 왜 나는 안되는것인가, 처음엔 조급증을 내다가 어느 순간 생각했다. 전공생들 10년해서 저렇게 하는 걸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거저먹을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묵묵히 하다보니 일년 반이 지난 어느 순간 조금씩 된다. 원리만 안다고 되는게 아니라 코어를 잡고 몸의 근육을 잡는 수련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마늘까기와 수학과 피아노의 아이소모르피즘은 이로써 증명되었다. Q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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