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하루 몰입. 노이즈. 이완 2012/04/18 21:54 by 장딸

아래글을 쓰고 처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사 후 정수기재설치부터 해서 은행계좌정리, 입주청소신청, 공기청정기, 하다못해 둘째 분유와 기저귀주문까지..
잡다하고 사소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일들이 그득인데 계속 미루고만 있었다.
둘째분유는 동네 마트에서 한통씩 한통씩..기저귀와 물티슈도 떨어지기 직전이고.
어쩔수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사는 예상과 마찬가지로 별탈없이 치뤘다. 아침엔 회사에 다녀오는 여유까지 부렸다.
이사온 동네는 기대 이상으로 마음에 든다. 회사가 가까운 것도 있지만 편의시설 좋다는게 이런거구나 체감하는 중이다.
학교가 없어 아이들 크면 또 떠날 동네라지만 그럼 어떤가. 일단 지금 편하면 됐지.

회사에 앉아 있다보면 저 위에 적은 "잡일이라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도 떠올리지 못한다.
퇴근하는 길에서야 문득 아..오늘도 못했구나 탄식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인터넷쇼핑이나 잡일을 하기에 눈치가 보이는 정황은 절대 아니거늘, 그저 내가 떠올리지를 못하는 것이다.
뭐 몰입이라 해야하나, 그런 셈이다.

"탈렙"을 알면서부터 노이즈 차단에 신경쓰게 되었다.
세상은 내가 원하지 않는, 오히려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주입하길 원하는 노이즈로 가득 차 있다.
탈렙을 알게된 때 짐로저스의 글에서도 정확히 같은 문구를 발견했더랬다.
일간지나 뉴스는 도움이 안된다. 짐로저스는 주로 미국언론을 공격했지만.

난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 언론은 그렇지 않아 다행이다, 저들처럼 되지 않을꺼다. 쯧쯧..하고 남의 일로만 생각했었다.
한데 지금, 그쪽보다 훨씬 더 나쁘게 되어 있음을 인정한다. 부끄럽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뉴스란 것들이 노이즈이고 나보다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 안보면 된다 생각했지만.
그래서 무시하고 별 무게감을 두지 않았지만.
그저 무시할 일이 아니었던 거다.

어쩌다가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나.
하여간 컴퓨터에 앉아 있는 시간 동안에는 일생각만 하게 된다는 것. 그게 마음에 든다는 것.
업무외 시간에는 완벽한 이완을 소망한다는 것.
애둘과 있으면 마음이 바쁘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완벽한 이완이다.

출퇴근때 모드전환 확실히 하기.
롱런하자.


나의하루 멘붕 또라이 로열티 2012/03/30 00:22 by 장딸

매일 '멘붕'을 외치며 살고 있다.

힘들면서도 참 재미있다. 그저 재미있다가 아니라 아침이 되면 설레고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그런다. 오늘은 특히나 그랬고 이어서 내일은 긴장감 클라이막스의 날인데 이사를 해야해서 휴가다. 잔금치르기 전에 회사를 다녀올까 고민중이다. 치르고 나서는 아마 거의 갈 것 같다.

혼자서 하는 세번째의 이사라 이번에는 너무 준비를 안했다. 이전에도 잘 했으니 별일없겠지 하고 넋놓고 있다가 이사전날밤에서야 등기권리증이라는, 집문서를 찾으니 없다. 부동산아줌마와 대책을 논의하고 남편직장까지 가서 지장을 찍는다는 둥 법석을 피우다가 찾기는 했는데 나도 참 준비가 안됐구나 싶다. 하지만 그러기엔 요즘 일상이 너무 바빴다. 어제 점심이 4주만에 사무실 밖으로 나가서 먹은 점심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어제밤엔 짬을 내서 남편과 건축학개론을 보았다. 나에겐 딱 맞는 속도감의 영화. 좋았다. 96학번과 멀지않은 학번이라 공감이 많이 갔다. 그 영화를 본 뒤로 계속 전람회 노래를 듣고 있다. 아, 그 영화에서도 '돈'이라는 것의 무자비성, 효율적인 듯 보이지만 진실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왔다.

그렇다지만, 내일 이사들어가는 나는 당장 그 돈이 모자라는 신세. 모자라지만 절대 아쉽지는 않다. 돈에 후달려서 살지 않을 것이다. 지금 하는 일이 돈 때문만이 아니라 즐거워서라는게 참 고맙다. 이전에는 아닌 적도 꽤 있어서 이게 얼마나 희소한 일인지를 안다. 사실 지금 일이 즐거운 것은 업무보다 조직의 '사람들'때문이다. 일은 그 전에도 동일했다. 그래서 나는, 근래 자살한 직원이 다섯명이나 된다는 모항공사가 오래 못갈 조직이다 싶다.

또라이법칙.
어느 조직이나 또라이는 있다.
또라이가 어디론가 가서 없어지는가?
그럼 다른 누군가가 또라이가 된다.
주위를 둘러봐라 또라이가 없는가?
그럼 당신이 또라이다.

난 이 조직에 와서 한동안, 내가 또라이인가 고민했다. 이런 조직 정말 흔치 않다. 돈 안 올려줘도 오래오래 다닐 것이다. 아주 좋아하는 책 '상식밖의 경제학'-진부한 제목과 달리 꽤 재미있다-에 나오듯, 돈으로는 직원들의 애사심을 살 수 없다.

어쩌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흘러왔나, 하여간 이 집에서의 마지막날 밤. 마지막 포스팅.


나의하루 인간 키우기 2012/03/18 21:13 by 장딸

부채 그 첫 5000년에 따르면, 명예의 척도를 측정하는 용도로만 쓰이던 화폐가 그렇지 않은 모든 것, 즉 계란, 이발비, 그리고 명예롭지 않은 매춘까지(돈이면 다 된다) 일상적인 모든 생활에 파고들기 시작하며 여성의 지위가 추락, 부권사회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 대목에서 생각나는 것이 있었으니, 수퍼괴짜경제학의 에필로그였다. 책 전권 내내 흥미진진하지만 마지막부분이 가장 백미였는데 내용은 이거다. 원숭이들도 화폐를 이용할 수 있을까? 경제학자들은 원숭이들에게 화폐사용을 훈련시키고 곧 원숭이들은 주화 하나와 포도 몇 알을 바꿔먹을 수 있음을 인지한다. 발전을 거듭해가던 어느날, 놀라운 일이 발견된다. 화폐의 사용법을 인지한 원숭이 사회에 매춘이 발견된 것이다. 즉 수컷이 포도교환에만 사용하던 주화를 암컷에게 주고 교미를 한다. (암컷은 그걸로 포도를 바꿔먹으려 했겠지) 경제학자집단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실험을 중단한다.

불과 얼마 전에 이런 짤막한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우리 어릴 적엔 아이들이 돈에 대해 아는 것을 어른들이 터부시했다. 유태인들은 어릴때부터 생일 선물로 주식을 사준다한다. 요즘엔 우리나라도 어린이경제캠프도 생기고 많이 달라졌다. 나도 아들 세뱃돈 코덱스나 야금야금 사줘야겠다'
오늘 불현듯, 아 내가 위험한 생각을 한 게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아들은 이미 천원, 만원, 거스름돈의 개념도 알고 가게에 가면 돈을 내야만 하고, 비싼 건 엄마가 돈이 없어서 못 사준다는 것도 안다. 아직 가난과 부자는 모르니 그나마 다행일까(어른들 매일같이 하는 돈이야기에 이미 알지도 모른다) 롤모델처럼 삼은 유태인은 이재에 밝은 이들이기만 하면 좋겠는데 전쟁과 폭력을 조장하는 금융사기꾼들기도 하다. 세돌도 안 된 애한테 내가 대체 돈의 어디까지 이야기를 한건가.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남편이 우연히 지나가다 보고 산 책인데 최근 은근히 화제가 되고 있었나보다. 폭력을 연구하던 정신의학자가 우연히 '공화당집권시에는 자살과 살인률이 올라간다'는 통계를 발견하고 연구한 결과보고서이다. 정치이야기보다 더 흥미로운 것이 '폭력을 부르는 것은 수치심이다, 수치심을 자극하는 문화를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폭력에 기대지 않고도 수치스러운 경험을 견뎌내도록 하는 것이 폭력을 예방하는 한 가지 길이다' 여기서 드는 생각은 "아 또다시 결론은 비폭력대화구나..." 보수정당은 전략적으로 폭력을 조장한다(아이러니하게 범죄와의 전쟁선포가 그 수단이다) 실업률은 올라가는데 실업이 가장 '수치스러움'을 안겨주는 일이다.

고3 때 우열반의 첫 시행년도에 들어 우반에 들어갔다. 2학년때까지 죽고못살던 친구들 모두와 헤어졌더랬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그 친구들과 나는 다른 스펙트럼에서 교집합없이 살고있다. 나뭇잎떨어지는 것만 봐도 말을 잇지 못하고 깔깔깔 웃던 친구들인데. 슬프다. 나는 우등하고 누구는 열등하다란 생각을 심각하게 하지 않던 그저 여고생들이었는데 시스템이 그리 만들고 갈라놓았다. 대학갈때 어차피 갈렸겠지만 한해라도 더 놔둘 순 없었는지 싶다.

아들에게 '아이고 우리 아들 잘한다, 글씨도 읽는구나'라는 칭찬이 다른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열등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겠구나, 반성한다. 그런 문화를 만들어놓으면 언젠가 아들이 뒤쳐질 일이 있을 때(반드시 있을테다) 수치심을 받겠지. 말 한마디를 조심해야한다. 말한마디'라도'가 아니라 한마디'를' 이다. 괴물로 키우지 않으려면 명심해야한다. 청소년문제가 심각하다고 아이들을 타박하지만 전부 어른들이 저지른 죄이고 업보다. 우린 벌받을 것이다. '황천의 개' 를 보면 일본교육의 병폐가 현재의 한국사회에 꼭 들어맞는데 그 책의 명언이 바로 이거다. 부모가 저지른 업은 자식이 갚는다. 아이를 키운다면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와 '황천의 개' 추천한다. 물론 '비폭력대화'도.

나의하루 공동체는 어디에 있나 2012/03/15 22:44 by 장딸

어여삐 여기는 사촌동생이 울면서 말했다. 학교에 다니기 싫고 집으로 내려가겠다고.
열심히 공부해서 가고싶은 과, 그것도 "in서울" 대학교로 간다고 본인과 식구들 모두 좋아했던 게 작년이맘때다.
장은 어지러운데 이 말을 들으니 더욱 어지러워 밤에 만나기로 했다.

나도 딱 고맘때, 공중전화에서 엄마에게 전화해서 엉엉 울며 말했다.
자퇴하고 대구 가서 경대 갈래.
엄마가 밤차타고 올라오셨다.
어찌어찌 봉합되었지만 그 뒤로도 자취방에서 혼자 밥먹다 울기도 여러번이었다.

동생을 만나 저 얘기를 해주리라, 원래 다 그런거다. 언니도 그랬다. 버티면 살아남는다. 다시 내려가는게 진정 니가 원하는거 아니잖아. 멘트를 잔뜩 준비했다. 난 꿋꿋이 살아남은, 동생의 롤모델이니까.

동생을 만나 이야기하는데 아..이건 아닌데...아닌데...
너무 슬퍼졌다. 동생 따라 나도 울고 싶어졌다. 
동생 하고싶은대로 하라고 했다. 서울에 남으라고 붙잡을 논리가 솔직히.. 없었다.
내가 대학다니던 때와는 시대가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다.
이리 마음이 힘든 동생에게 그간 공부 열심히 해라, 책 많이 봐라, 동아리 생활은 꼭 해야해 재미있거든.
아무것도 모르며 저런 얘기한 내가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집으로 돌아오며 드는 생각은, 공동체는 과연 어디에 있나 오로지 그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들을 키우며 드는 가장 큰 걱정이, 얘는 과연 건강한 공동체에 속할 수 있을까?
학교도 아닌것 같고, 골목 또래들 집단도 없고, 어디에서 건강하고 따뜻한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느낄 수 있을까.
현재 내 유일한 대안은 친정집 골목 네트워크다. 나는 이것 때문에, 대구에 보내놓고도 사실 그리 안타깝지 않다.
물론 아들을 보고싶은 내 마음은 오죽하겠냐만은 대구 골목동네에서 받는 사랑과 그 수많은 관계들,
그건 서울 여기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문제가 어린 아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미성년자가 아닌 다 큰 성인이 되어서도 나타나는 문제였던 것이다.
요즘 대학생은 관심이 딱 두가지라 한다. 취업과 짝짓기.
들어보니 요즘 대학 캠퍼스는 과학회나 동아리, 이런 생활이 죽은 지 오래인가보다.
나 대학때도 한창 죽어가던 중이기는 했다. IMF이후 과외끊긴 선배들이 돈이 없어 후배들 못챙겨준다며 미안해했다. 그래도 그때는 새우깡에 소주뿐이더라도 사줬었다.
일대일로 멘토붙여 챙겨주고, 학생회관밥도 사주고, 밤새 이야기도 해줬다.
그런 선배들이 있고 동아리생활을 해도 서울생활은 외로웠었는데, 공동체 하나 없는 내 동생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처음엔 서울 가스나들 정이 없어서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곧 서울가스나들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임을 깨달았다.
한번씩 모교에 가면 교내에 들어와있는 프랜차이즈들과 값비싼 커피샵들을 보며 요즘 학생들은 무슨 돈으로 학교생활을 하나.
등록금도 천정부지에 책값,밥값,교통비 모든 물가는 올라있고 저런 데서 커피 먹는 애들은 뭐지? 싶었다.
내가 만일 지금 시대에 학교를 다녔으면 문화생활은 당연히 못하고 친구들과 커피 한잔도 당연히 못했을 거다. 돈많은 애들은 즈이들끼리 놀러다니겠지. 돈없는 지방학생은 그냥 자취방에 틀어박혀 인터넷이나 했을 것이다. 사교생활도 돈이 있어야 하는 거니까. 돈안드는, 동아리방에서 친구들끼리 기타치고 같이 숙제하고 놀기 이런 건 없어졌으니까. 우리 모교는 공간이 협소하다며 동아리방도 많이 뺐으니까. 그 아이들은 다 어디 들어가 있는 걸까. 캠퍼스 안 투썸에 돈내고 들어가 있으려나.

곧 리뷰를 올릴 "부채 그 첫 5000년"을 읽는데 마지막장에서 눈물이 날 뻔했다.
막스의 자본론에 대한 설명이 이렇게 와닿기는 처음이었다. 공산주의란 단어가 이렇게 와닿기도 처음이었다.
그 두꺼운 책에서, 인류학과 경제금융을 설명한 책에서 결론으로 제시한 "사랑"이라는 단어에서 울컥했다.
모든것은 연결된다. 돌고 돌고 돌아 같은 문제다.
이런 식으로는 계속 갈 수 없다. 무언가 나올 것이다. 


Derivatives 2012/03/09 18:01 by 장딸

신혼집은 문래동이었다.
성장기는 단독주택에서, 대학때는 원룸에서, 직장다닐때는 오피스텔에서 살았던 나에게 아파트생활은 처음이었다.
15년된 아파트, 거기다 일층이었지만 살기 나쁘지 않았다. 지하철역이 가깝고 마트도 바로 앞에 있어서 편하게 살았다.
단 일층이라 마루엔 늘 커튼을 쳐야했고 겨울엔 추웠다.
그러다가 전세계약만료와 남편근무지가 바뀌며 이사를 하게 되었다.
남편도 나도 직장이 가까운 곳으로 위치를 정하고, 일층생활은 피하다보니 이번에는 꼭대기층에 가게 되었다.
밖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보일 염려하지 않아도 되어 좋았으니 이번엔 여름에 많이 더웠다.
첫해는 어찌어찌 견뎠지만 이듬해는 못참고 에어컨을 샀다. 애기도 나오고해서.

두번째 집으로 들어가는 이사때, 나는 첫아이 임신 초기였다.
이사중에 너무 졸려서 아무데나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결국은 엎드려 잤더랬다.
안쓰럽게 쳐다보던 엄마가 기억난다. 이사는 엄마가 다 해줬다.
그 집에서 나는 혼자 밥을 지어먹고, 혼자 책과 영화를 보고 그러다 엉엉 울기도 했다.
임신을 하면 확실히 감수성이 풍부해지는데, 마침 그 당시가 남편이 가장 바쁜 때라 대부분 나 혼자 있어서 마음놓고 울었던 것 같다. 그렇게 열달을 채우고 아기를 낳고 이틀만에 집에 들어왔더니 엇. 갑자기 집이 좁아졌다. 아기야 걷지도 기지도 못하는 신생아지만, 조리해주러 온 친정엄마와 각종 애기용품이 더해지니 집이 좁게 느껴졌다.
그래도 얼마나 행복했던지. 아기가 하는 모든 행동들이 정말로 신비하고 황홀했었다.
친정엄마와 둘이 앉아 애기만 하루종일 쳐다보고 좋다고 웃고.

그집도 전세계약이 다 되어갈 즈음, 조금 더 먼 곳으로 집을 넓혀 갔다.
세번째 집으로 이사를 할 때는 또 둘째 임신중이었다. 이때는 친정엄마는 애기 봐주셔야해서 시어머님이 도와주셨다.
감사한 어머님들.. 엄마들이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그래도 친정엄마와 시어머님은 다른지라, 그때도 임신초기라 서있기 힘들고 너무 졸리운데 어디 가서 잘 수는 없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30평대로 이사를 하고나니 신세계였다. 이렇게 넓을 수가.
그 전에는 좁아서 한번밖에 해보지못한 집들이를 여기 와서는 n번을 했다.
밤에 잘 땐 세 식구 다 마루에 이불깔고 뒤굴뒤굴 잠을 자고. 여기서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를 했다.
복직을 하고 새벽부터 첫째 어린이집으로 셋이 출근해서 빠이빠이하고 각자생활후 저녁엔 또 합체하기를 일년.

그러다가 이달말이면 또 이사를 간다. 1.5년밖에 안됐는데 간다.
회사를 옮겼는데 출퇴근 한시간이 넘는 곳을 다니자니 너무 힘이 든다.
이렇게 진빼느니 집을 옮기자 싶어 또 빚을 내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어제 이사견적을 받고 서류에 싸인한 걸 이전것들을 모아둔 철에 넣다가 옛날집들 생각이 났다.
첫번째 이사는 77만원, 두번째는 95만원, 이번 이사비용은 무려 140만원이다.
지난번 이사와는 크게 달라진 것도 없는데, 이쪽 물가도 참 많이 올랐다.
그래도 몸으로 힘들게 해주시는 분들 labor fee는 깎으면 안된다는 게 어무이의 가르침.
지난번, 지지난번 둘다 엄마가 하라는대로 돈을 더 드렸다.

이번에는 좀 오래 붙어있어야할텐데. 이사비용과 각종 번거로움이 만만치않다.
그래도 직장 가까운데로 얼른 갔으면 좋겠다. 봄이 오면 애기들과 걸어서 한강도 가고, 꽃구경도 가고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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