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수학의 힘 -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2017/01/27 00:16 by 장딸

케인스의 글을 읽다가 논리전개의 힘과 그보다 더 멋진 글발에 여러번 한방씩 맞아가며 보다가...
노동의 동질성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깨달음이 왔다. 맑스 역시 자본론의 시작을 '노동은 동질한가?'로 시작하는데 여기서 케인스와 맑스의 차이가 나온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똑같은데 과정이 다르다. 수학자이자 통계학자였던 케인스는 isomorphism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이고, 그 덕에 아주 간결하게 설명하는 것을 맑스는 돌아돌아서, 말로 구절구절 설명한 것이다. 수학의 힘. 맑스는 그 대목만 그런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부분에서도 그러한데, 수학의 힘을 좀 더 쓸 수 있었다면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내가 케인스를 더욱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수학의 힘으로 논리를 빠방하게 전개해놓고 마지막에 한다는 말이 '근데 숫자 너무 믿지마. 그러다 망해' 이러니 사랑할 수 밖에.

하지만 두 사람의 공통점도 찾았다.
논리가 아무리 좋더라도, 글발이 없으면 꽝이다. 이 두사람의 글발은 그냥.....죽인다....나는 지금 이 책을 논리보다 글발때문에 보고 있다. 여러 문장 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케인스, 리카도, 맬서스, 맑스 2017/01/26 14:29 by 장딸

오래전에 어느 경제학 책에서 스키델스키의 케인스전기를 여러번 인용한 것을 보고 그 책이 너무 보고싶었는데 국내에는 나와있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그 책의 완역본이 드디어 나왔다는 이야기에 바로 손에 넣었는데 와..대단한 책이었다. 

재미있게 읽어가다가 종종 당시의 경제상황과 케인스의 이론에 대한 대목에서 헷갈릴 때가 있었다. 그럴때 스키델스키가 케인스의 원저에서 인용한 문구를 보면 아...이해가 되곤 했다. 스키델스키의 설명도 나쁘진 않았지만, 역시 저자직강.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그 원저 중 하나가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이다. 케인스의 글발은 또 어찌나 좋은지.

오늘에서야 그 책을 읽는다. 번역자 조순씨의 글, 케인스의 서문, 그리고 책 도입부부터 빵빵 날려준다. 후학들이 정리하고 요약한 책들도 많지만은, 역시 저자직강. 이렇게 좋은 책을 2900원에 팔다니 <올재 클래식스> 넘나 훌륭하다....비봉출판사에서 1985년 처음으로(자본론처럼) 국내 번역본을 냈다는 대목에서 또 반가움.. 

책의 도입부에서 케인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고전파는 두 개의 기본공준 위에 서 있는데 그 중 두번째, 기업주와 노동자들의 교섭이 실질임금을 결정한다는 가정은 개소리다.(라고 나는 이해했다) 노동자는 그 자신의 실질임금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런 수단이라고는 '전혀 없을 수 있다'. 이것이 나의 주장이다. 이 대목에서 박수를 쳤다. 케인스가 아래 서문에서 밝히길 이 책은 '낡은 관념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라고 했는데 책 시작부터 제대로 날린 것.

주석에 달린 리카도가 맬서스에게 쓴 편지를 보다가 둘의 입장차이가 헷갈려 또 다른 책을 꺼냈다. 이럴때마다 꺼내보는 백하우스의 '지성의 흐름으로 본 경제학의 역사'. 리카도가 맬서스에게 말한 것은 이런 거였다. 맬서스야, 너는 부의 총량과 근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정치경제학은 비율의 문제(즉 분배)란다. 자본론에서 맑스가 리카도의 노동가치론을 긁은 대목이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여기서 또 이해했다. 가치와 가격은 분명히 다르고 리카도는 거기서 꼬투리를 잡혔다. 리카도가 노동가치론을 도입할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공장이 생기며 공산품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등등.

....이 책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중요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잘 읽지는 않는 책, 즉 고전이 되었다.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박사 학위를 받고, 논문을 쓰고, 교수가 되는 데 별 지장이 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책은 경제학도라면 언젠가는 정신을 가다듬어 재삼 정독해야 할 기본서이다....나는 언어가 빈약한 나라에서는 좋은 학자가 나오기 어렵다고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의 학자들은 처음부터 복을 잘 타고난 사람이라고 보아왔다. 애덤 스미스나 J.S. 밀 또는 케인스를 읽을 때마다 그들이 구사한 말의 높은 수준을 재삼 음미하고 그들의 사상이나 논리도 그들의 언어와 무관하지 않다고 항상 느끼고 있다....2007년 12월 10일 조순, 한글개역판 서문

....사람이 오랫동안 혼자서 사유할 때 일시적으로나마 극히 황당한 것까지도 믿어버리게 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이 책을 만드는 일은 저자에게 있어서는 기나긴 탈출의 고투-사고와 표현의 습관적 양식으로부터의 탈출의 고투-였는데...어려움은 새로운 관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대부분이 자라온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라온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구석구석까지 침투되어 있는 낡은 관념으로부터 탈출하는 데 있다. 1935년 2월 13일 케인스.

공부 일본어 1 2017/01/09 23:38 by 장딸

아들 방과후 프로그램으로 고민을 많이 했다.
수영을 그만두고 싶어해서 일단 중지했는데 당장 개학후 강독모임에 가려면 새로운 것을 해야했다.
발레냐 합기도냐, 한데 둘다 괜찮은 기관은 내가 라이딩을 해야하고 나의 공부를 위해서는 다른 것을 또 잡아야한다.
아이를 위한 선택과 나를 위한 선택은 접점이 없었다.
오늘 기관에 방문하기로 하고 전화로 약속을 하고 대충의 전략을 세웠다. 
그런데....

일본어 수업에 참관을 갔다가 바로 전략을 수정했다.
아들을 설득해서 수영을 일년 더 하는 것으로 하고, 요일을 조정하면 나는 월,금요일 모두를 얻을 수 있다.
일본어 교재를 바로 사서 왔다.

아트레온에서 공부를 하다가 본 영화는 '너의 이름은'.
생각해보니 극장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본 것은 처음이다. 기분이 묘했다. 일본어를 시작한 날. 
히라가나를 열다섯개 외운 상태에서 들어가서 건진것은 몇개 되지도 않는데 신기했다. 그리고 아쉬웠다.

어제 잠을 못자 피곤한 상태인데도 책을 보고싶어서 바로 히라가나 동영상을 틀어 끝까지 보았다.
그리고 교과서의 첫줄을 읽어냈다. 곰 아저씨가 주머니를 발견했습니다. mp3를 틀어보니 정말 그대로 발음을 한다. 
재미있다.

리뷰 2017.01.05 Aida 2017/01/06 14:05 by 장딸

후배를 만났다. 식당에 먼저 들어가 닭도리탕을 시켜놓고, 술도 먼저 시켜 먹고 있을까 하다가 기다렸다. 오랜만에 본 후배는 반가웠고, 그간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을 했다. 자기 자리에서 참 열심히 살고 있는 친구.. 후딱 술을 먹고 노래방으로 갔다. 여덟시 반에 들어가니 영업시작 전이었는데 둘이 들어가서 참 재미나게도 놀았네. 월초 업무가 많은 동네라, 이날은 일찍 헤어졌다.

다음날 아침, 정신못차리고 누워있다가 헐레벌떡 일어나 신사역으로 달려갔다. 이날은 또다른 직장후배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타이음식점에 들어갔는데 이친구나 메뉴를 네개나 시키더니 맥주도 먹자고 했다. 나야 좋지!! 그래서 평일 점심, 여자 둘이서 한상 차려 맥주를 먹으며 신나게 이야기를 나눴다. 어제는 싱글의 고충을 함께 했다면 이날은 워킹맘의 고충을 나눴다. 지금도 여전한 워킹맘의 고단함.. 그래도 다들 참 씩씩하게 살아낸다. 대단하다.

헤어지고 나서 책방을 찾아보니 강남역쪽에 중고책방 두개가 붙어있다. 이게 왠 떡인가. 예스24와 알라딘이 있었는데 한번도 가보지 않은 예스24 중고서점을 택했다. 컨셉은 알라딘과 거의 같고 커피는 팔지 않는다. 일단 합격점. 앉아서 이런저런 책을 보다가 빌 브라이슨의 책에 정착했다.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은, 원래 전집을 사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여기서 1권부터 보니 감흥이 덜한 판들도 있어서, 나중에 몇권만 따로 살까 하기로 했다. 빌 브라이슨의 영국여행기 책을 보다가 결국은 사들고 나왔는데 알고보니 남편이 이미 이사람의 책을 몇권 사놓았다고. 주제도 참 다양하게 쓰는 작가였다.

퇴근한 남편과 마장동박현규 식당에서 만났다. 식당이야기는 별로 쓰지도 않고 음식사진도 올리지 않는데 이곳은 다르다. 아이들이 없는 주간, 둘이 하는 외식으로 흡족하게 이곳에서 고기를 먹고 잠실로 이동했다. 샤롯데에 들어가니 오늘의 아이다는 점심에 만난 후배가 이야기한 그 친구였어서 인연에 놀랬다. 세상은 원래 랜덤인데 그 랜덤 가운데서도 만들어지는 우연이 신기하다. 

뮤지컬은 어쩌다보니 웬만한 건 다 보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아이다는 그동안 한번도 볼 생각을 안 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옥주현이 땡기지 않아 아예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한데 이번에는 남편이 엘튼존과 팀라이스 콤비니까, 한번은 봐야겠지 않냐기에 마지못해 따라갔는데 오늘의 아이다 장은아는 아주 멋졌다. 캐릭터 자체가 멋지기도 했지만 옥주현이었으면 아마 몰입이 안됐으리라 예상해본다...지난번 엘리자베쓰의 타격이 너무 큰건가... 하지만 엘튼존의 것이라기엔 그렇게 귀에 들어오는 음악은 아니었고, 1막 엔딩곡(The god loves Nubia)을 제외하고는 그저 그랬다. 남성 군무를 애써서 강조한 것 같았는데 나쁘진 않았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남성무는 빌리 엘리엇의 Grandma's song에 나오는 군무...연기처럼 사라져버리는 군무...

발레 스파르타쿠스를 보면서 깨닫게 된 건데, 치렁치렁하고 휘황찬란한 공주들의 드레스보다 더 멋진게 노예의 복장이었다. 그냥 캐미솔같은 것 하나 걸치고 있는데 그게 그렇게 이쁠 수가 없었다. 그걸 입은 연희자들의 떼군무도 마찬가지. 어제 본 아이다에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여담으로, 스파르타쿠스는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에서만 올라오고 서양국가에서는 한때 금기시되었다는데, 극을 보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정확한 내용은 차후에 책에서 발췌하고 보강...

어쨌거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 볼만한 작품이었다. 음악이 확 임팩있지도 않았고 군무도 그러했지만 스토리 자체가 괜찮았다. 아이비가 맡은 암네리스 공주역은 처음에 비호감으로 나와서 끝까지 그렇게 평면적으로 가는 진부한 캐릭터이겠거니 했는데 중간에 서서히 변해가서, 그 점이 좋았다. 다만 이 작품을 보면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1'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사연은 이렇다.

얼마전에 토이스토리1을 아이들과 함께 보다가 시대가 변했음을 깨달았다. 바비 인형들이 몸매를 강조하는 섹시댄스를 추고, 공주인형은 조신한 태도를 보이다가 군사인형에게 키스를 해준다. 지금으로 봐서는 굉장히 불편한 여성성이 그 당시에는 아무 문제의식없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었다. 지금은 디즈니도 변한 세상이다. 슈렉에서 못생긴 공주가 나왔고 겨울왕국에서는 못생긴 왕자마저도 필요없는 나홀로 여왕이 나왔다. 이런 시대에 토이스토리1을 보니 느낌이 확 다른 것이다. 한데 이것은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때껏 본 대부분의 뮤지컬에는 노출한 여자들이 떼로 나와 춤추는 '쇼' 대목이 꼭 나온다. 무슨 공식처럼. 내가 좋아하지 않는 뮤지컬은 그 중에서도 저 대목이 심화된 작품들이다. 미스 사이공에서는 사창가의 창녀들의 쇼가 나오고 국내 창작물들에서도 저 공식은 꼭 지켜진다. 하다못해 '그여름 동물원'에도 김완선이 저 공식에 투입되어 나온다. 어제 아이다에서도 공주와 시녀들이 샤워타월을 몸에 두르고 목욕하는 씬이 나와서 그걸로 끝인가 했는데 패션쇼를 하는 씬이 또 나와서 시간 아깝다....고 혼자 되뇌었다. 토이스토리1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괜찮았다. 특히 아이다 역을 맡은 장은아는 캐릭터도 멋졌고, 노래와 연기도 좋았다. 눈여겨 봐놨다가 다음 작품도 볼까 싶다. 
  

리뷰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2016/12/15 10:58 by 장딸

지난 10여년 동안, 대학입시제도는 몇 번이나 바뀌었다....요컨대 대학입시는 수험생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그럴 듯한 핑계를 대고 좀더 쉽고 편한 방향으로 달려왔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 형식은 수험 과목을 줄이는 것이다...국립대학 교수에게 과목을 왜 그렇게 줄이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생들이 모두 사립대학으로 가버리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즉 학생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험생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과목을 점차 줄인 결과 거짓말처럼 상식조차 모르는 학생이 대학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도 대학 진학률은 45%를 넘고 있지만 대학에 입학한 뒤의 교육수준이 매우 낮기 때문에 총체적 지적 능력은 뚝 떨어진다. 미국과는 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 차이는 서점에 가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미국에서는 지적 수준이 꽤 높은 책이 베스트 셀러에 포함되어 있지만, 일본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는 것은 대부분 지적 수준이 낮은 것들뿐이다. 텔레비전은 모두 오락 프로그램 일색이고, 압도적으로 잘 팔리는 것은 만화 잡지이다. 일본의 지적 국력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수준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 대학입시 문제다...과거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물리, 화학, 생물 세 과목을 공부했고 10~20% 정도의 소수의 학생들이 그 중 하나를 버리고 지구과학을 선택했지만, 지금은 물리를 이수하는 학생이 겨우 17% 정도이다. 물리는 모든 과학의 기초로서, 다른 과학에서도 지금 물리와의 경계 영역에 해당하는 학문인 물리화학, 생물물리라는 부분이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으며, 지구와 우주의 과학인 지구과학 등은 물리와의 인연이 매우 깊다. 요컨에 과학은 물리에 관한 기초지식이 없으면 그 참된 내용을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수율이 17%라는 것은 일본에서는 앞으로 과학을 기초부터 이해하는 사람이 격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국과학의 경우에는...7%에 불과하다....미적분을 모르는 학생이 도쿄대학 공학부에 입학하여 교수를 놀라게 하거나, 고등학교에서 생물학을 이수하지 않은 학생이 의학부에 입학하여 교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이 에피소드(나폴레옹을 몰랐다는 대학생)가 너무 유명해져 이런 식으로 세계사 이수율이 떨어진다면 앞으로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최근 세계사에서 최하 2학점을 따야한다는 교칙이 정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가장 큰 문제는 과목 수 삭감 자체에 있다.

물리 부문에서는 이미 사실상의 보충수업이 시작되었다고 했다..."최근에 고마바에서 진학해오는 학생들 중에는 뉴턴 역학을 모르고 있는 학생들이 있어서 정말 난처합니다...그래서 어쩔수 없이 보충학습을 실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을 정도입니다."

일찍이 대학에는 예과라는 것이 있었다. 대학은 원래 고도의 전문과정에 속하는 학문을 가르치는 장소이기 때문에 전문 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그 준비 교육이 필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대학에 입학하면 우선 예과에 들어가 그곳에서 전문과정의 기초 교육을 마친 뒤에 본과로 진학했다...도쿄대학의 교양학부를 비롯한 각 대학의 교양과정에서 실시하고 있는 대부분의 수업은 예과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이 속출하여 모든 대학에서 보충학습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은 예과에 들어가기 위한 예과가 필요해졌다는 뜻이다. 지금 도쿄대학에서는 30% 남짓한 학생들이 고등학교 졸업 후 학원에서 공부한 뒤에 입학하고 있는데, 그 학원이라는 것도 일종의 예과다...예과(학원)에서 예과(교양학부)로 들어가 그곳에서 다시 예과에 들어가기 위한 예과(보충학습)교육을 받은 다음에 비로소 본과로 진학하게 되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일본의 고등교육은 볼 장 다 본 셈이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문부성이 대중에 영합하는 식으로 중,고등학교의 교육수준을 계속 낮추었기 때문이다. 문부성이 '융통성 있는 교육'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초,중등교육의 수준을 떨어뜨린 결과, 일본은 모두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원을 들락거려야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융통성'을 발휘하는 교육 국가가 되어버렸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학 입시 부담을 경감시킨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대학입시제도를 느슨하게 만든 결과, 대학은 기본적은 수학능력도 갖추지 못한 학생들을 입학시켜 다시 보충학습을 시키는 어리석은 고등교육기구가 되어버린 것이다....18세 인구가 격감하여 지원자 전원이 대학에 입학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대학의 질은 더욱 떨어질 것이다.

법학부의 엘리트는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는다...일반인의 경우 도쿄대학이라고 하면 법학부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또한 도쿄대학 졸업생이라고 하면 관청이나 대기업에 들어가 엘리트로서 사회적인 성공을 거머쥔 사람을 떠올리기가 쉽다. 하지만 내 관점으로는 그런 사람들은 결코 도쿄대학의 주요 멤버에 해당되지 않는다. 도쿄대학의 주요 멤버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공부가 너무 좋아서 학문 탐구에 전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법학부 졸업생 중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겨우 4%에 불과하다...다시 말하자면 법학부 졸업생의 가장 큰 관심사는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다.

일본 엘리트들은 교양이 없다...흔히 관료주의라고 하면 법규만능주의, 획일주의, 형식주의, 영역근성, 전례답습주의 등의 키워드가 떠오르게 된다. 그 이유는 관료들이 법률직에 종사하는 사람들답게 머리 속에 대부분 법률과 규칙만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치르는 시험 내용을 보면 이것을 쉽게 알 수 있다...교양 시험에는 꽤 많은 분야가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사상'은 한 문제이고 '문학,예술'은 한 문제도 없다. 이것은 일본의 엘리트들에게 사상과 문화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과 직결된다. 중국의 과거제도는 대부분 사상과 문화에 대한 교양시험이었다. 시대가 다르다고는 해도 이것은 정도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일본의 엘리트는 관료든 민간인이든 도쿄대학 법학부 졸업생이 대부분인데, 그들은 대체적으로 교양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의 대장성 관료의 스캔들에 관하여 이런 칼럼이 실렸다. "독자 여러분, 대담하게 발상을 전환합시다! 윗사람에게 무엇이든 바치는 일본인의 나쁜 습관과 결별해야 합니다. 도쿄대학 출신자들은 위대하다는 사고방식도 이제는 버려야 합니다(도쿄대학이 일본 제일의 대학이라고 자부한다면 어째서 나쁜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초보적인 교육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않고 있는 것입니까!)." 정말로 맞는 말이다. 대장성 관료를 비롯하여 최근에 스캔들을 일으키고 있는 정부 고관들(특히 체포되지 않고 있는 못된 관료들) 대부분이 도쿄대학 법학부 졸업생이다. 중학생이 나쁜 사건을 저지르면 즉시 학교에 문제가 있다,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한목소리로 비판하는 우리가, 어째서 대장성 스캔들에 대하서는 "도쿄대학 법학부는 대체 어떤 식으로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것이나?"라고 비판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마지막 강의에서 교양에 대해 질문을 던진 학생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간단히 대답할 수 없는 문제라네. 하지만 자네들은 대학생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정도는 스스로 생각해서 답을 낼 줄 알아야지." 칸트는 인간의 지성을 오성, 판단력, 이성 등 세 가지가 계층 구조를 이루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그 가장 낮은 수준에 해당하는 것은 오성(이해력)이며, 그것을 갖추는 기본은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덧붙여 칸트는 이렇게 말했다. "일정한 명령에 복종하는 하인이나 공복은 오성만 갖추면 된다. 장교는 자신의 업무에 대한 일반적은 규칙만을 지시받는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판단력이 필요하다. 장군은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을 미리 판단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스스로 규칙을 생각해내야 하기 때문에 이성을 갖추어야 한다....하급 관료는 이치를 따질 필요가 없다. 그들에게는 행위의 준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원리를 자주 감추어두어야 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것을 모르게 해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명령권자(장군)는 반드시 이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자(즉 오성조차 갖추지 있지 않은 자)는 '미천한 하급관료'조차 될 수 없는 사람이다.

서유럽 사회에서는...어떤 세계에서든 간에 기본적으로 교양이 없는 사람이 무시당하는 상황은 과거와 마찬가지다. 그리고 교양이 없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인지 모르지만, 교양은 특별히 과시하지 않더라도 한두 마디의 말이나 대화에서 사용하는 어휘구사와 몸짓, 일상생활에서 드러나는 행동을 통해서 드러나게 되어 있다. 교양은 쉽게 갖출 수 없다....그것은 학교의 성적이나 국가시험의 성적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언젠가 그들의 인격 자체에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평범한 법학부 학생들, 즉 대학을 맛있는 빵을 손에 넣기 위한 발판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교양이 없는지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도쿄대학 법학부 졸업생들은 사회에서 과대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취직 전선에서는 꽤 잘 팔리는 존재이며, 특별히 눈이 높지 않은 이상 대부분 좋은 직장에 스카우트된다...그렇기 때문에 마음 놓고 놀게 되는 것이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당시에는 틈만 나면 마작을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우리는 지금 읽은 플라톤이나 비트겐슈타인에게 한껏 지적인 자극을 받아 토론을 벌이고 있는데, 그런 한심한 이야기가 들리니 당연히 방해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법학부에는 정말 한심한 녀석들이 많아. 언젠가 저런 녀석들이 관료나 일류 기업의 사장이 된다니, 생각만 해도 한심해." 이것이 당시 우리 동료들이 자주 나누던 이야기였다. 도쿄대학 법학부 학생들 대부분이 교양다운 교양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 시절부터 변함없는 나의 신념이다.

독일식 교양의 개념을 따른다면 아이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를 물 속에 던져 놓고 잠시 동안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영은 익힐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하여 일본에서는 노트와 키워드를 적은 카드를 한 손에 들고 방바닥 위에서 수영하는 방식을 가르쳐주면 저절로 수영을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교양을 그렇게 간단히 공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서유럽 선진국의 표준적인 교양 수준과 비교할 때, 국가 전체의 교양수준이 낮은 일본의 경우에는 간부사원의 교양수준이 지나치게 높으면 오히려 사내에서 따돌림을 받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교양이 부족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여 일반 사원들로부터 '서민적이다', '인간미가 있다'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 훨씬 더 낫다. 즉 도쿄대학 법학부 학생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교양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결론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국내에서만 생활한다면 난처한 상황에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교양이 없다는 문제 때문에 난처한 상황에 빠지는 사람은 외국의 진정한 엘리트들과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일본의 최고 엘리트들이다...그런 교양의 유무가 철저히 드러나는 곳은 파티 장소다...그곳에서 보이는 행동 하나로 그 사람의 사회적 평가가 순식간에 상승되거나 하락되어, 그 후에 사회에서 그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결정이 나기도 한다. 즉 사회적 인간 관계가 형성되는 격전장인 것이다.

도쿄대학 졸업생은 우수한 엘리트라는 이미지가 일반적이며, 도쿄대학 졸업생이라는 간판만 내세우면 어느 곳에 취직해도 출세 가도를 달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물론 우수한 졸업생들이 많고 사회 각층에서 지도적인 입장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어느 회사, 어느 조직에서도 받아들이지 않아 빈축만 사는 졸업생들도 얼마든지 있다...절대 수로 볼 때 능력 있는 도쿄대학 졸업생들보다 평범한 졸업생,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졸업생들이 훨씬 더 많다. 도쿄대학 졸업생은 그런대로 머리가 좋아 일을 맡기면 나름대로 처리하지만, 한편으로 도쿄대학 졸업생이라는 자만심이 너무 강하여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생각만큼의 평가를 받지 못하면(평범한 일이 평범한 평가밖에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자신이 과소평가받고 있다고 생각하여 즉시 욕구불만에 빠져 인간관계를 그르칠 뿐 아니라, 결국에는 평범한 일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 되어간다. 그리고 그 결과 조직에서 성가신 존재로 전락할 뿐이다. 그런 사례가 매우 많기 때문에 도쿄대학 졸업생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높은 편이 아니다. 최근에 <주간 다이아몬드>지가 "인사부장이 솔직하게 선택한 대학랭킹"이라는 기사를 발표했다..첫번째 괄호는 그 항목에서 1위를 차지한 대학이고, 두번째 괄호는 도쿄대학의 순위를 나타낸다.

1. 대학에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교토대학) (2위)
2. 개성적이다 (도쿄예술대) (14위)
5. 조직의 일원으로서 융화를 잘한다 (게이오대학) (96위)
6. 조직을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다 (게이오대학) (7위)
7. 영업 부문에 잘 어울린다 (와세다대학) (78위)
10. 창조성이 있다 (교토대학) (11위)
11. 정신적으로 자립해 있다 (와세다대학) (25위)
12. 이 대학 졸업생은 꼭 채용하고 싶다 (히토쓰바시대학) (6위)

도쿄대학은 어느 항목에서도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종합 득점으로는 7위에 그쳤다.

나는 학생들에게 그들 자신의 교양을 점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어도 반나절 또는 며칠에 걸쳐 대형서점의 책장을 모두 정성스럽게 살펴보고 돌아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이렇게 하면 자신이 갖추고 있는 지식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지식의 총량과 비교할 때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실질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거짓과 잘못을 간파하는 능력...아리스토텔레스 이후에도 서유럽에서는 허위론이 발달하여 수많은 허위 패턴이 도입되어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논의가 되어 있기 때문에, 논쟁을 벌일 때도 "그것은 논점선취의 허위에 해당한다"라는 식으로 패턴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잘못된 논리를 봉쇄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이런 논리에서의 잘못을 간파하여 그것을 지적하는 지적 훈련이 결정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초보적인 오류추리에 근거를 둔 논리를 펴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 지적 세계의 참담한 실상을 연출하게 되었다. (아마 초,중등교육의 문장교육이 국어 교사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장평가가 논리적인 전개 능력보다 정서적 표현 능력에 편중되었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도쿄대학 다치바나 세미나>
다치바나 : 과학과 수학 과목 감소는 여러가지 영향을 초래하고 있어. ..지구과학 선생님을 고등학교에서 따로 고용하는 일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어. 지구과학은 물리 선생님이 겸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 그런 식으로 과학과 수학 과목이 줄었기 때문에 교원자리가 대폭 줄어들었다. 그래서 학교에 따라서는 물리 선생님이 생물을 가르치는 식으로 겸임을 하는 현상이 계속 증가하고 있지.....과학과 수학교육의 약화 현상 때문에 일반인들도 과학에 대한 지식이 줄어들고 관심도 떨어졌어. 그 결과 매스미디어의 프로그램 안에 과학과 관련된 내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당연히 떨어졌지...그러자 이번에는 매스미디어 쪽에서도 사원을 채용할 때 대학에서 이과계열을 공부한 사람을 채용할 필요가 없어졌지. 과학계통의 대학교육을 받은 텔레비전 PD, 신문기자, 편집자는 필요가 없어진 거야. 그 결과 과학과 관련된 방송시간할애나 지면할애가 줄어들었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일반적인 기사나 프로그램의 지적 수준이 매우 떨어졌다는 거야. 그 때문에 과학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만 있어도 나올 수 없는 발상이나 의견이 버젓이 등장하고 있지....일본에서는 지식의 디플레셔너리 스파이어럴(deflationary spiral)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의 디플레이션도 무섭지만, 지식의 디플레이션은 더 무서운 일이지. 몇 세대에 걸쳐 영향을 끼치니까.

다치바나 : 문부성은 항상 학력 저하 문제는 없다고 부정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 학원이 학력 저하 현상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초,중학교에서부터 학원에 가서 학력저하를 막으려는 개인들의 노력이 모여서 국제 시험 등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이지. 문부성이 자랑할 이야기는 전혀 아냐....학습지도요령이라는 것이 최소규정인가 최대규정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의회에서 논의가 있었는데 문부성의 관료는 이것이 최소규정이라고 답변했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학교 현장에서는 줄곧 학습지도요령 이상의 내용은 가르치지 않는, 최대 규정으로서 운영해왔거든. 교과서 검정도 그런 식으로 운용해왔지...문부성이 일정한 선을 그어놓고 , 그 이상의 내용은 가르치지 말라고 결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건 마치 중세 교황청에 있었던 금서목록과 같아.

다치바나 : 교양이 없는 사람들이 모인 가장 거대한 집단이 '전문적인 바보'들의 집단이지. 또 하나는 '단순한 바보'야.(웃음). 이 두가지 카테고리가 기본적으로 존재하는데, 이것 이외에 단순한 바보들의 집단을 이끄는 것을 대단한 긍지로 여기고 있는 '바보들의 보스'가 있지. 지금의 정치가, 관료들의 상당부분이 여기에 해당되네. 지금 일본 사회에서는 이 3대 바보 집단이 여러분야에서 꽤나 거만한 태도로 활동하고 있어.

다치바나 :<천자문> 모르나? 고등학교 일본사 수업 시간에 배웠을 텐데?
히라오 : 저는 세계사와 지리를 공부했어요.
다치바나 : 일본 역사를 공부하지 않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하긴 요즘에는 그럴 수도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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